격자 사이 광선
Grid, Relations, Rays
이희단의 작품에 대해서
(이희단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ijouxdemelusine/)
김륜아
우리의 시대는 형식주의의 시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매체들이 지닌 형식에 기반한다. 이희단의 작품이 여타 “혼종성”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희단의 작품은 뒤섞인 형식뿐 아니라 시각 매체로 인해 변화한 사고 구조까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고 구조와 그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허구적 요소들은 불가분한 것임을, 즉 현실과 가상이 서로 개입하게 되었음을 작품의 형식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드러난다.
첫 번째 지점은 서사 구조에 있다. 이희단의 작품에는 이런 주제의 작품들이 흔히 지니는 마음대로 받아들이라는 식의 ‘열린 구조’, 의미 없음을 돌려 말하는 ‘때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은 없다. <기폭제>와 <히키코모리 낭만>의 블론드 걸(절대자)은 관객에게 선택지를 주는 척하면서 항상 퇴로를 차단하며, <핑키윙키 볼륨 2: ‘베이비’>, <장미와 케이크, 그것들에 더하여>에는 영상과 퍼포먼스가 혼합되어 있지만 그 혼합에는 차례와 알맞은 타이밍이 있다. 방사형으로 뻗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설정, 서사, 시각적 요소들은 하나의 이야기에 종속되어있다. 이러한 모습은 비주얼 노벨 게임(Visual Novel Game)을 떠오르게 한다. 배경 이미지와 BGM을 제외하면 텍스트(서사)로만 진행되는 비주얼 노벨 게임에는 선택지가 존재하기는 하나 진짜 결말 하나만을 위해 나머지 요소가 봉사한다. 예를 들어 <히키코모리 낭만>에는 <기폭제>와 <핑키윙키>의 가상의 설정들, 다른 데서 가져온 클리셰적인 장면들, 다양한 시각적 형식들이 공존하지만 이 요소들은 모두 인식을 바꾸고 살아갈 것을 제안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종적인 요소들이 부차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 두 번째 특징이다. 왜냐하면 가상이란, 클리셰란, 떠도는 이미지들이란 인간이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클리셰적인 서사와 시각적 요소들은 상투성을 유지한 채로 재-가공된다. 이러한 방식은 얼핏 작가가 부여한 의미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의미를 더 탄탄하게 만든다. 가상의 요소들은 자신이 진부하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더 진부하거나 조악하게, 혹은 미묘하게 미적인 감각을 지니는 식으로 가공된다. <기폭제>와 <히키코모리 낭만>의 인물들은 디스토피아 클리셰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대화한다. <히키코모리 낭만>에 주로 등장하는 유치한 폰트, 무료소스 이미지, 베이퍼 웨이브나 가짜 뉴스의 형식은 미묘하게 ‘예뻐 보이는’ 정도로 편집되어 작중 제시되는 위기감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마지막 지점은 현실과 가상이 직접 오고 가는 작업 과정에 있다. 이희단의 작업에서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직접 촬영한 영상이나 퍼포먼스는 다시 작품 내의 설정이나 시각적 형식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작품의 설정과 시각적 형식이 현실에서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장미와 케이크, 그것들에 더하여>에서는 영상 속 인물이 행하는 움직임을 작가가 스크린 앞에서 퍼포밍하고, <핑키윙키> 시리즈에서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현실의 두 여성(작가 자신도 포함된다. 즉, 작가도 오고 감 속에 있다.)이 직접 퍼포먼스를 한다. 나아가 <히키코모리 낭만>에서는 ‘핑키’와 ‘윙키’가 다시 가상의 서사 속으로 돌아가는 등 작품들 사이에도 서로 개입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히키코모리 낭만>에는 ‘REC’, ‘녹화 중’이라고 표시된 실사 영상 클립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현실이 가상에 개입할 때 가상이 항상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는 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히키코모리 낭만>의 마지막 장면은 클리셰다. ‘윙키’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러나 파란 하늘은 점점 작아져 촬영된 영상이 흔히 지니는 틀 속에 갇힌다. 그런데 이때 이미지가 된 파란 하늘에 갑자기 노을이 지고 가로등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그 옆으로 태양빛이 눈을 쏜다. 이희단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무수히 많은 날실과 씨실 사이에서[1] 광선을 데리고 온다. 결국에는 현실로.
[1] 이희단 작가 본인의 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