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과제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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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아
현재 저의 추상 회화 작업은 추상 표현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19년부터 추상 표현주의에 놓일 수 있는 종류의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학기에 들어서는 조금 변화가 생겼는데, 제 감정을 소재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 작품의 이러한 변화를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가 1950~60년대 이후로 작가의 흔적을 지우거나 대중매체를 수용하는 등 변화를 겪었던 지점에서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추상 표현주의는 ‘추상’이라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이며, ‘표현’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실존을 재현에서 벗어난 붓질로 나타낸 회화입니다. 그러나 기계 및 복제 기술의 발전, 대중매체의 등장, 그로 인해 변화한 사회 분위기, 그린버그의 매체 특정적 회화이론이 되려 미니멀리즘을 야기한 것 등, 여러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서 ‘추상’의 형이상학은 형식적 문제가 대체했고, ‘표현’은 오히려 그 주관성을 지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변화는 ‘추상’과 ‘표현’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변화의 원인에 대해 할 포스터는 우선 표현주의의 본질적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에 따르면 표현주의는 붓질이 재현에 종속되지 않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붓질은 예술가의 흔적으로, 그의 주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때 화가의 흔적과 손(도구) 사이에는 투명한 연결관계가 존재합니다.[1] 마이어 샤피로는 이처럼 화가의 감정과 현존을 강조하는 흔적들이 1957년 당시 점점 더 균질화되고 기계화된 세계 속에서 자유와 개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여 추상 표현주의를 옹호했습니다.[2] 하지만 포스터는 이런 흔적이 한 작품 안에서,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서 반복 사용되면 단순한 행위나 표현이 아니라 수행이자 기호가 되며, 그 결과, 이런 흔적들은 화면으로부터 분리되고 만다고 분석했습니다. 게다가 표현주의라는 양식의 반복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폴락이나 드 쿠닝은 독일 표현주의의 연장선에 있었는데, 작가의 실존을 나타내는 붓질, 감정에 따라 형태가 왜곡된다는 표현주의 사조 등의 개념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던 겁니다.[3]
또한 추상은 그 탄생에서부터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알프레도 바주니어가 제시한 “큐비즘과 추상미술” 도표처럼, 20세기 미술에서 이어지는 일직선으로 추상미술과 추상표현주의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린버그의 '회화의 매체특정성을 평면성으로 보고 재현을 거부하는 사고방식'은 오히려 화가들로 하여금 추상 그 자체의 물질성에 초점을 맞추게 만들었습니다. 추상은 사물로서의 지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추상의 이러한 양면적 지위, 초월적인 힘과 단순 사물, 완전한 어떤 것과 아무 것도 없는 것. 이런 이중적 위치는 이미 추상의 탄생 그 첫해에 보이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말레비치의 모노크롬과 로드첸코의 모노크롬이 각각 초월적인 대상과 사물에 가까웠던 것이 그 예입니다.[4]
그래서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 특히 2세대 작가들은 흔적을 자신의 손이 아닌 중력 등 외부적 힘으로 남기거나, 아예 흔적을 지우는 절차를 고안했습니다. 점점 화가와 그 흔적 사이의 투명한 관계에 균열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헬렌 프랑켄탈러, 모리스 루이스 등은 중력과 우연에 의해 캔버스에 얼룩이 생기게 하는 방법으로 몸의 흔적을 제거합니다. 또한 1950년대 후반의 라우셴버그와 스텔라 등의 젊은 작가들은 이미 선배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이 비난했던 기계화되고 균질화되는 사회의 변화를 기법 차원에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클라인과 드 쿠닝 같은 모범적 추상표현주의자들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클라인은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스케치를 큰 캔버스에 옮겼고, 드 쿠닝은 대중매체 속 여성의 이미지를 소재로 사용하거나 제작 과정에서 트레이싱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 알버스나 스텔라 등이 더 확실하게 형이상학적과 몸짓 대신 객관성과 규율을 활용하게 되었고, 표현주의자들이 피해온 반복과 표준화를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골드스타인은 복제를 다시 복제하는 방식으로, 리히터는 스퀴지를 사용해 제작자와 흔적 사이를 분리하려고 했습니다. 이 둘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재료를 분석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흔적과 제작자를 제거했다는 점 등입니다.[5]
즉, 추상 표현주의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추상’과 ‘표현’의 내제된 이중성을 드러내고, 그 이중성을 반영하는 쪽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제 추상 작품의 변화 또한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감정이나 실존적 문제를 반영하기 위해 사용된 붓질의 방식들(긁어내기, 문지르기, 두껍게 덜 섞인 채로 바르기 등등)은 반복될수록 원하는 화면을 만들기 위한 기호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번에 제작한 <장면-색상> 시리즈에서는 무엇을 그릴지 정하는 단계에서 실존이나 감정과 관련된 문제가 배제되었습니다. 저는 유튜브의 영상 클립 속 움직임을 보고 드로잉을 하고, 그 드로잉을 토대로 회화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저의 그리기 방식은 작업 과정 및 붓질을 비인격화하여 주관성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골드스타인, 리히터 등의 화가들과 달리, 화가인 저와 그 흔적인 붓질이 연결되어 있는 전통적인 표현주의의 붓질입니다.
그런데 저는 마이어 샤피로처럼 추상 표현주의가 모든 것이 균질화되는 세계의 마지막 보루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회화에 그런 저항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 물질로 존재할 때는 저항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이미지로 올라가게 됐을 때도 저항 능력이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추상 표현주의로 분류되는 화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제가 유튜브 등으로 대표되는 짧은 동영상과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정사각의 크롭된 이미지가 무수히 업로드되는 그 이미지 유통체계를 좋아하면서도 그 체계에 저항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면서 저항감을 느낀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중독’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중독처럼, 이미지 중독입니다. 이런 행위가 제게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스크롤을 내리는 그 동작과 자극적인 시각 정보 덩어리에 집중하는 동안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독에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인터넷 상에서 이미지를 보고 모으는 일은 때로는 강박적이고 정신을 지치게 만듭니다. 제가 ‘추상’의 형이상학적 주제에서는 벗어났으면서 ‘표현’의 주관성은 유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이미지가 제 안에서 소비되는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주관적인 붓질을 통해 이미지를 저라는 사람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중독의 부작용을 상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