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리허설>을 보고.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글. 륜아가.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이 리허설이 실패로 끝난다는 뜻인지, 실패를 미리 연습해보는 리허설이라는 뜻인지 그 의미가 궁금해졌다.
초반 4분 가량은, 날이 좋은 날, 소나무가 멋진 산 중턱에 앉아있는 사람의 이미지 자체를 보게 되었다. 햇빛이 아름다운 날인데 앉아있는 곳은 그늘이라 시원해 보였다. 무표정하게 구부리고 앉아있는 사람은 검정색으로 몸을 휘감고 있어서 풍경과, 가끔 울리는 까마귀 소리와 어울렸다. 무표정이 사실 좋지 않은 표정임을 알아차리는 건 손으로 눈을 씻어 내리는 행동을 할 때였다.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실패의 감정을 미리 연습해보는 리허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름다운 풍경이 괴로워하는 사람의 감정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았다. 풍경이 아름답다 느낄수록 사람은 더 쓰라려 보였다. 손가락을 모았다 폈다 하는 것들, 고개를 수그리는 것, 몸을 뒤척이는 것들. 사소한 움직임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일어서더니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새 소리, 작게 들리는 사람들 소리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표정이나 몸의 미세한 움직임이 정말 우는 것 같았다. 사실 아직도 우는 소릴 정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어딘가의 산에서 벌어진 일일 텐데, 나는 이 영상을 보고 어릴 적 책상 밑에 숨어 몸을 수그리고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이 사람은 사방이 뚫려 숨을 수 없는 곳에서 영상을 촬영했을 텐데,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이 영상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깊이 숨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다시 앉았다가, 후반부에 다시 일어선다. 몸이 계속 휘청거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결연한 표정으로 몸을 흔들흔들한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산은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도 품어주는 곳이다. 혹시나 이 사람이 뛰어내릴까 겁이 났다. 영상으로는 바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안전한 바위에 앉아있는 것인지, 주변은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 뛰어내릴 의도가 없다고 해도 휘청거리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나의 걱정을 뒤로 하고, 폴짝, 뛰어내린다. 예상하지 못했다. 뛰어내릴 줄 몰랐고, (꽤 오래 서서 휘청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다시 앉을 줄 알았다.) 낮은 곳이었다. 정확히는, 돌 앞쪽은 낭떠러지로 보이기도 하는데, 착지한 곳은 낙엽이 깔려있어 폴짝 착지하자 기분 좋은 소리가 나는 곳이었다. 이 마지막 장면의 쾌감이 정말 좋았다. 꽤 긴 영상이었는데 끊지 않고, 스킵하지 않고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장면을 보자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실패의 감정을 미리 연습해보는 리허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잘 착지하기 위한 리허설이기도 했구나 알게 되었다. 바위의 높이는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므로 관객은 이걸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된다.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실제로 알기 전에는, 해보기 전에는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 착지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수 차례 가정한다. 이미 한 번 죽었다 생각한다. 결심하고 뛰어내린다. 실제로는 괜찮았다. 사람은 착지하기 전 눈을 감고 있었다. 발을 헛디뎠다면 크게는 아니어도 작게 생채기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뛰어내릴 때 그 느낌이, 참 경쾌하고 산뜻해서 그래도 이 사람은 아무 탈없이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7분이나 준비했기에 그렇게 산뜻하게 뛸 수 있었던 걸까? 여하튼 덕분에 나까지 다 시원한 기분이 든다. 머리를 맞은 느낌, 씻겨 내려간 느낌이 든다.
첫 번째 해석에서 착지하기 전까지가 리허설이고 착지하는 게 실전이라면, 다른 한 가지 생각은, 이 영상 끝까지 다 리허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안전한 쪽으로 뛰어내리지 않는 것이 실전이고, 이 리허설은 실패를 경험해보는 리허설인 것이다. 산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모습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다음에 실전, 즉 자살 같은 장면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담담하고, 담백하고, 시원하다. 다음 씬이 있다면 ‘그래서 뭐?’하고 잘 살아가는 장면이지 죽음이 아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미리 죽는 상상을 해보고 ‘이 리허설을 실패로 끝내겠다!’하고 결연히 착지했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뭔가 이런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영상이 주는 분위기가 있다. 이날의 날씨가 주는 빛의 느낌, 새나 사람들의 작은 소리들, 장소의 위치 선정(굉장히 안정적이고 절묘한 위치), 길고 구불구불해서 머리카락이자 동시에 의복 같은 사람의 머리와, 그 머리와 같은 색의 옷, 미묘한 표정과 몸짓들 같은 것들이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어느 정도 해석(오해)을 마쳤는데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내 해석만이 전부가 아닐 것 같다. 폴짝, 착지할 때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