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뒤에서 밧줄을 쥐고
She grabbed the rope behind the curtain.
송민지의 <Ironic Garden>(2021) 및 드로잉 작품들을 보고.
김륜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천, 건식 재료와 수채를 사용한 드로잉, 스티커처럼 붙여진 드로잉,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가늘고 긴 짜이다 만 크림 같은 오브제, 작은 액자, 둥근 그림, 작고 네모난 그림. 송민지의 작품을 이루는 다양한 재료들은 한 데 모여 설치된다.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하나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관객은 작가가 구성하는 세계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가 만든 이 세계에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색, 채도 높은 분홍색, 살짝 명도가 낮아진 코발트색, 강렬한 주황색 등과,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때가 탄 누리끼리한 색들이 공존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색들은 현실적인 색들과 한 데 어울려 이 세계가 현실에서 출발한 픽션임을, 현실의 어떤 면을 과장한 허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때 관객은 장막을 슬쩍 걷어 올리고 기존의 세계와 닮았지만 다른,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엿보는 입장에 있다.
유인원과 비슷한 형상의 여성, 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과일, 내장의 모양을 한 오브제들을 묶어 주는 것은 주로 천, 밧줄, 기다란 오브제 등 길게 늘여지는 것들이다. 이 기다란 것들은 어떤 이중성, 공격성을 내포한다. 천과 밧줄은 위협적이기보다는 약하고 부드러운 것들이지만, 사람은 이런 것들로마저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천과 밧줄은 세계를 묶어주는 역할, 세계를 가렸다가 다시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작품 속 이미지들이 지닌 잔인함과 함께 관객을 덮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얼핏 약하고 소녀처럼 보이는 것 뒤에는 숨겨진 공격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작품은 여고생을 떠오르게 한다. 여고생은 대외적으로는 순수하고, 왈가닥이고, 연약한 존재로 비치지만, 사실 여고생만큼 속에 분노가 끓고 있는 강력한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포트폴리오에서 제시된 설치 전경은 주로 벽에 설치된 장면들이다. 그래서 작품들은 하늘하늘한 천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수동적인 공격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공간 전체로 설치가 확장된다면 연약함과 공격성 중에 후자가 더 강하게 다가올 것이고, 이는 작가가 실험을 계속하면서 변주될 영역이다. 이러한 이중성에는 설치의 방식뿐만 아니라 세계 구성원 중 하나인 드로잉의 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의 드로잉에는 얇고 약한 선과 얇지만 강한 선이 함께 있다. 얇고 흐릿한 선은 몽환적이고 가녀린 느낌을 주고, 얇지만 강한 선은 그 가녀림 속에 숨겨진 냉소를 드러낸다. 이 얇고 강한 선에는 항상 특유의 표정이 있다. 관객을 비웃는 그 표정은 어딘가 슬프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