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지 마세요
안병남의 <사막에서>에 대한 단상
2024.2.8
김륜아
기억에만 남고 사라져버린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공사장이 되어버린 들판, 거기서 들리던 동물의 소리, 초면인 사람과 잠시 나누었던 대화들. 작은 기억 파편들은 머릿속을 유령처럼 떠돌다가 이따금 번쩍하고 찾아온다. 그렇게 된 기억에는 시간성이 없다. 그것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실체를 잃어버린 기억은 작고 반짝이는 조각이 되어 영원히 움직이는 상태로 뇌를 부유한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들을 잡아내고 싶어하고, 그것을 실체화한다. 흥미롭게도 안병남의 <사막에서>는 사냥감이 도망치면 도망치는 대로 내버려둔다. 작가는 사라진 것들의 꼬리를 따라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부터 느끼는 환상의 전부다. 잃어버린 것을 꼭 되찾아야 할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면 그로부터 오는 향수는 단숨에 사라져버릴 텐데. 안병남의 <사막에서>는 사막에 생겨나는 신기루처럼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매혹하는 것, 잃어버린 것을 쫓는 과정에서 오는 감각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몸뚱이를 지녔다. 작가는 땅에 발을 딛고 있다. 작가는 잃어버린 것들을 쫓기 위해 몸뚱이를 지우고 허구의 존재가 되기로 한다. 이야기, 소리, 무엇이든 나타나게 하는 마법의 초록색과 은색. 그것이면 충분하다. 영상은 어두운 공터에서 낭독을 하는 두 사람으로 시작한다. 먼저 말하는 남자는 다소 전형적인 사막을 배경으로 한 글의 서두를 읽는다. 뒤이어 말하는 남자는 반짝이는 플래시로 어둠을 가르며 대화문을 읽는다. 대화문은 어떤 한 나라에서 처음 만난 듯한 두 사람의 질의응답인데 배경이 사막인지는 알 수 없다. 답하는 이는 자아가 옅어 누구라도 대입될 수 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파란색, 길바닥의 돌멩이, 자장가. 시를 쓴다고 하던데 글은 모른다. 영화를 만든다던데 계획은 없다…’ 이것으로 우리도 신기루를 볼 준비가 되었다.
낭독 장면 이후로 은박 가면을 쓰고 은박 새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든 두 사람이 등장한다. 별 모양의 은박 가면을 쓴 남자가 모래 언덕에 벌러덩 누워있다. 남자는 마법을 부리듯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린다. 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느새 남자를 사막에 누워 구조신호를 보내다 지쳐서 늘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그의 속마음 같다. 목소리에 따르면 그가 누워있는 곳은 원래 길 잃은 강아지들이 노니는 농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있는 것이 있다는 여자의 말은 남자의 기억 속 농지가 실체만 없을 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말처럼, 분명 한국의 근교 어딘가일 이곳이 동시에 기억과 상상이 섞인 어딘가일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장면은 전환되고 남자는 갑자기 A씨가 길을 잃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종이 나팔을 힘겹게 분다. 그가 무섭다던 개 짖는 소리와 비교하면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가 A씨든 아니든 간에 잃어버린 길을 찾을 마음은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가면의 두 사람은 초록색 천을 세워두고 그 위로 지팡이를 흔든다. 초록색 천은 그 위에 무엇이든 나타나게 할 수 있는 크로마키 천 같다. 주변이 은근히 비치는 가면과 지팡이의 새 장식은 언제든 그 은빛 안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러올 것만 같다. 새 소리와 비슷한 무언가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귀신을 부르는 원시 부족의 주술일까? 그들의 주술이 으레 그렇듯 이들은 현실에서 실제로 무얼 이루려는 속셈이 아니라 상징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상징 행위가 필요하다.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으므로. 사냥감이 잡힐지 말지 몰라도 일단은 빌고 믿는다. 후에 사냥감이 진짜 잡혔던 아니던 그런 사사로운 일은 인간의 기록에 남지 않는다. 기록에 남은 것은 무언가를 바라던 과정, 즉 동굴 속 믿음의 흔적들이다. 두 사람의 주술적 행위 위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이전 장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주술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법이 성공하였느냐고? 그러게 내버려뒀을 리가. 불러낸 것이 손에 잡히는 순간 희미한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무서운 현실이 찾아올 뿐인데.
안병남 작가 영상 작업은 이쪽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