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에서 2021년까지 불안에 대한 반응에서 출발한 회화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몸의 흔적이 화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는 공통점을 지닌다. 불안은 반복 강박에서 출발하는 반응으로, 반복적인 이미지와 신체화 증상을 동반한다. 나는 2019년 당시, 불안할 때마다 떠오르는 왜곡된 몸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일련의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내 몸에 가하고 싶은 동작을 몸을 그린 화면에 표현했다. 긁고 할퀴고 잡아당긴 손자국을 통해 화면에 그려진 몸 이미지는 왜곡되었는데,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가 내가 재현하려던 것에 오히려 더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물질적이고 촉각적인 회화적 흔적에 매료되었다.
한편, 2020년 이후로는 나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증상이 완화되면서 이런 몸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 과정이 역으로 불안을 야기했다. 이전에는 몸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이 나의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준 반면, 증상이 완화된 이후로는 오히려 그 감정 상태에 잠식되게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2020년 이후로는 몸짓을 드러내는 그리기 자체에 집중했다. 구상적인 형태나 화면 구성이 아니라 몸짓을 가장 강조하는 그리기 방식은 불안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해소할 수 있었다. 몸짓을 드러내는 회화적 흔적과 이를 토대로 변화하는 화면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장되었다. 나는 왜 붓 자국이 눈에 보이는 회화는 화가의 주관적인 감정과 연결되는지, 회화는 어떤 식으로 화가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멀어질 수 있는지 등의 문제를 연구했다.
2021년의 작업에는 몸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과 몸짓을 드러내는 작업의 두 가지 특성이 혼재돼있다. 몸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에서 나는 몸 이미지를 붓질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이용했다. 또한 몸 이미지 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따라서 2021년부터의 그림은 불안에서 촉발된 것이라기보다는 표출되지 못하고 고여있던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에 더 가깝다. 나는 억압된 에너지를 두껍고 질척거리는 붓질, 오일바(Oil Bar)의 알갱이가 남아있는 크림 같은 붓 자국, 붉은 계열과 파란 계열의 보색 대비를 기반으로 하는 진하고 깊은 색, 시원하게 화면을 가로지르는 궤적 등으로 화면에 분출했다.
휴식기를 가진 후 2023년부터의 작업은 표현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좀더 고이기 전에 분출하는 식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2021년 하반기에 어느 정도 나타났는데, 2023년에는 보다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정제하여 분출하게 되었다.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부정적인 에너지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쉬는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자연을 많이 접하면서 나는 에너지의 폭발을 실제 삶에서도 어느 정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풍경화 작업을 새로 시작하였는데, 풍경화 작업들은 기억 속 장면을 재현하느냐 체험했던 순간을 재현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