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 뺌! 정주원 작품에 대해서
25.3.7
김륜아
<IC (an)B (e)M (arilynMansonIfIWantToMom) or Alternately, Rocket with Nose Piercings.>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정주원 작가의 작품의 제목이다. 처음에 읽힌 것은 기다란 원통형의 대상과 맞물리는 ICBM이라는 미사일 이름과 피어싱한 코라는 서술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건 어떤 말장난이렷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는 “아이씨, 뺌. 에일리언, 남자, 아들은, 내가 원한다면, 엄마에게.”로 읽었다. 에일리언과 사람의 혼종이 엄마에게 욕을 하나보다 했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I can be Marliyn Manson If I want to, Mom!”이란다. 군사적 위협행위를 십대 청소년이 엄마에게 마릴린 맨슨이 될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으로 비유한 언어유희라고 했다. 듣고 보니 설득력 있었다. 작가도 이를 의도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에서는 “아이씨, 뺌, 에일리언, 남자, 아들은, 내가 원한다면, 엄마에게.” 라는 이상한 콩글리쉬가 작가의 그림과 더 가깝다고 주장할 것이다.
제목의 언어유희에서 느껴지는 비웃음과 회의와 달리, 작가의 그림에서 처음 느껴지는 것은 균형과 안정감이었다. 큰 덩어리와 작은 덩어리들이 조화를 이루어 화면을 균형감 있게 채우고 있다. 큰 붓질, 작은 붓질, 색채를 전달하는 붓질, 형태를 구축하는 붓질, 맨 천의 여백까지,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게 섞여있다. 보색과 인접색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색채의 분포도 조화로웠다. 게다가 발튀스, 뒤샹, 세례자 요한 등 서양미술사 속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인용한 그림들까지 있었다.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그림을 “좋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제목을 보게 된다. (그림은 언어보다 훨씬 빨리 뇌에 각인된다는 점에서 그 대단한 언어에 비견할 한 가지 무기를 지닌다. 그림에 그런 힘이 없었다면 머릿속을 맴도는 말의 울림이 그림을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이렇게 그린 거라니, 정말 그림을 좋아하는 작가구나.’ 그리고 그림을 다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붓질들이 정말 좋아하는 마음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겠구나.’
화면 왼쪽에는 끝이 두 갈래로 나눠진 긴 초록색 막대기가 달린 어떤 큰 구조물이 있다. 흰색과 검붉은색의 배선들과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초록색 주변으로만 꼼지락거리는 작은 덩어리들이 없다. 따라서 큰 구조물과 작은 덩어리들 사이에 공간감이 생긴다. 제목의 ICBM이나 로켓이라는 단어로 보아, 아마도 이 구조물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양이다. 화면 중앙과 그 우측에는 툭툭 끊어졌다가 문질러져서 다시 이어지는, 흐릿했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작은 덩어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부분 역시 큰 구조물에 사용된 초록색, 검붉은색, 옅은 노랑과 흰색 등이 뒤섞여있다. 조금 다른 점은, 좀더 색들이 섞여서 올리브 그린 같은 느낌을 낸다는 것이었다. 색들의 채도는 결코 낮지 않지만 그렇다고 발광하는 색은 아니다. 그리고 화면의 공간감을 창출하는 흰색 또한 명도가 아주 높은 흰색은 아니다. 이 그림의 흰색은 희뿌연 안개로 작용하여, 그림을 로켓이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으로 보이게도 하고, 끝이 여러 갈래로 나눠진 막대들과 구부러진 흐릿한 고리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장면으로 보이게도 한다. 칙칙하지는 않지만 결코 밝지는 않은, 밝은 색의 사물을 흐린 날에 마주하는 것 같은 작가의 색채는 그림을 제목과 이어주는 단서가 된다. 그럼에도, 제목이 없다면 그림 속 안개를 작가의 냉소적인 태도와 바로 연결 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에서 언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언어에는 과연 말만 있는가? 어떤 화가의 붓질은 언어가 아니지만, 어떤 화가의 붓질은 언어다. 상형문자, 표의문자처럼. 정주원 작가의 붓질이 그렇다. 그의 붓질들을 자세히 보면 비슷한 모양들이 반복되고 있다. 몸짓으로 보이는 그의 붓질들은 단순한 몸짓을 넘어 의미를 담은 바디랭귀지, 수화, 문자다.
<무엇!에 의해 발가벗겨진 독신자들? (뒤샹을 돌려)>는 뒤샹의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의 주체와 객체를, 화면을 세로에서 가로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그 회전의 움직임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뒤샹의 원본에서는 없었던 작가만의 기호, 언어가 된 붓질들이었다. 화면 왼쪽 상단에 위치한 말풍선 같은 붉은색 붓질은 큰따옴표처럼 “와 “가 쌍을 이루고 있다. “와 “의 사이는 비어있다. 말하고 있는 것은 따옴표 기호뿐이다. 그리고 작가가 자신의 문자표를 제시하는 듯한 2024년의 Shapes 연작 중 <Butch's Cut>과 <On Tenterhooks>에서 따옴표는 다시 등장한다. 전자에서 갈고리와 같은 모양은 여성 레즈비언 중 남성성을 강조하는 헤어스타일로 의미를 부여 받은 기호가 되었다. 후자에서는 당긴 천을 걸어 고정하는 후크가 되었는데, 영어에서 이 단어 자체가 긴장되는 상황이 예상되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역시 의미를 담은 기호가 된 것이다. 뒤샹을 텅 빈 문장에 담고 가뒀던 따옴표는 작가가 자주 쓰는 붓질, 문자이고, 그 문자는 문장에 따라 레즈비언의 머리스타일이 되었다가 후크가 되었다.
이 연작에서 <Famous Last Words>는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다. 연작 중 <OK> 연작과 달리 이 작품은 어떤 기호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는 화면 좌측 상단의 고리 모양의 붓질을 세 번째 손가락을 치켜 든 손 모양 혹은 남성의 성기, 즉 어떤 욕설로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마지막 단어라는 게 ‘시발’(출발이 아닌 욕설로서의 시발)이라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욕설이 마지막 단어인 소설은 꽤 많을 것 같아 나는 내 추측을 믿었다. 그러나 구글은 내게 동명의 밴드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미 내게 이 그림의 제목은 ‘시발’이 되었다. 마지막 단어에 놓인 욕설이 ‘출발’이라는 뜻도 된다니, 이미 내 뇌는 서로 다른 것들의 회로를 강하게 이어버린 상태였다. 이것이 언어의 무서운 점이다. ‘ㅅㅂ’은 시옷과 비읍일 뿐인데 ‘시발’이라는 의미를 너무 많이 담다 보니 ‘시발’의 약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화가의 붓질에는 문자와 다른 지점이 있다. 갈고리 모양이 계속 반복되더라도 그것은 고정되지 않고 무언을 담는 따옴표가 되었다가 머리카락이 되었다가 후크가 될 수 있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분명 해가 들지 않는 해양성 기후인 나라의 습한 옷장 속 곰팡이를 지니고 있겠지만, 그 분위기만이 공통점일 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붓질로 화면을 구축하는 정주원의 그림 제목은 “엄마, 난 마릴린 맨슨이 될 수도 있다고요!”처럼 완성된 하나의 문장으로 읽히기엔 더 복잡한 것이다. 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떤 신경질적이고 조소하는 외침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씨, 뺌. 에일리언, 남자, 아들은, 내가 원한다면, 엄마에게.”로, 아직은 무엇이든 될 가능성이 남은 문장으로 그 작품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