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eugenekim_art)의 그림에 대하여

25.4.5

김륜아

김유진의 그림 속 붓질은 졸졸 흐르는 물줄기처럼 얇고 유려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감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흘러내리지는 않는다. 캔버스 표면에 얇지만 굳어서 고정된 물감층은 얕은 개울가와 달리 깊이감을 지닌다. 이는 붓질 한 획에 존재하는 농도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깊이감이다. 예를 들어, 과일을 담은 접시 옆 숟가락은 한 두 개의 붓질로 이루어졌지만 그 농담으로 인해 숟가락이라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움푹 들어간 것 같은 깊이를 지닌다. 누르면 쑥 들어갈 것 같은 구름, 찔릴 것 같은 선인장의 가시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그리는 소재는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그림을 이루는 색채에는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파란빛이 도는 강한 조명 아래서 찍은 사진 같은 느낌의 피사체들은 흰색이 섞여 명도는 높고 채도는 낮은 색들로 이루어져있다. 차가우면서 동시에 따뜻한 느낌은 파란 조명과 흰색의 혼색이 주는 효과다. 이때 그림자는 강렬히 묘사되는데, 이러한 빛 처리는 일상생활보다는 제대로 된 사진 촬영 현장에 가까워 친근하면서도 어딘가 먼 느낌,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그가 그린 몽환적인 장면들은 조명, 색감, 구도적 측면 외에도 사진과 연관을 갖는다. 예를 들어 천사를 그린 그림은 천사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그렸음에도 그것이 어떤 신화적 장면으로 느껴진다기 보다는 천사 일러스트가 그려진 어떤 카페의 간판, 그것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만 같다. 이는 앞서 말한, 실제 물리적 깊이는 얕으나 많은 변화를 담고 있어 풍부한 붓질 한 획 한 획으로 그림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많이 쌓기 보단 한 획으로 밀도를 나타내는 김유진의 붓질은 돌 위를 흐르는 세찬 물줄기처럼 화면과 화면 위에 올라가는 이미지를 확실히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대상을 이미지로 파악하고 한 번에 찰칵 소리로 그 이미지의 깊이를 담아내는 사진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