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평
김륜아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작가가 겪은, 예술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기록이다. 2025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국제 갤러리 이사로 재직 중인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중 마지막 3부다. 윤혜정은 영화 전문지 에디터로 시작하여 패션지에서 피처 디렉터로 활동했고, 패션과 예술을 다루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2020년부터 <인생, 예술>,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행하는 <Koreana>의 편집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1]
이 책은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를 방문하여 예술을 경험한 열 다섯 개의 에세이들로 이루어져있다. 각 에세이들은 시간과 장소와 관련된 저마다의 테마를 갖고 있다. 움직임, 한계, 경험, 컬렉팅, 예술가의 삶 등 각각의 테마들은 어떤 식으로 예술적 경험이 시간과 장소를 경유하며, 그 한계를 넘어서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이야기한다.
예술이 SNS에 자신을 보기 좋게 선전하거나 경제적 투자 목적의 도구로 주로 다뤄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어떻게 일반 관객이 예술에 다가가야 할지 알려주고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예술인력, 관객들을 두루 만나 온 저자의 이력은 이 역할을 수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미술관과 같은 일반적인 미술 경험의 장소뿐 아니라 비엔날레, 컬렉터의 집, 작가의 작업실, 서울에서 전시를 관람한 루트 등 다양한 장소를 바탕으로, 그 당시 그 장소에서 어떤 예술적 경험을 하였는지가 현장감 있게 묘사된다.
이 책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이뤄지는 예술적 경험이 개인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감을 전달한다. 이는 저자가 직접 시간을 들여 몸으로 경험한 사례를 통해 제시된다. 독자는 이를 따라가면서 저자가 본 풍경을 체험하고,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듬어 나간다.
초반의 3장은 시간과 장소와 관련된 예술 작품 경험의 핵심을 테마로 삼았다. 1장은 직접 몸을 움직여 예술 작품을 보러 간다는 것의 의미를 ‘움직임’을 테마로 이야기하고 있다. 움직임을 반영한 예술 작품, 관객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 작품,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는 예술 작품은 그만의 고유한 장소성을 만들고, 이러한 특별한 장소성이 관객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는 것이다. 2장은 비엔날레에 방문했던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민족, 국가, 장소, 시간, 소속 단체 등 그 어떤 ‘한계’도 넘어서 관객에게 도착하는 예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매체에 따라 한계를 지니지만, 작품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그 한계를 넘어서고 관객의 뇌리에 파고든다는 것이다. 3장은 프랑스 아를에 위치한 이우환 미술관 방문기를 통해 예술 작품은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자아를 지우고 관계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이우환의 작업을 예시로, 관객도 그렇게 미술관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예술 작품을 찾아내고 감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4장부터는 보다 세부적인 테마들을 다루고 있다. 4장은 컬렉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예술 작품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다른 세계에 진입하게 하고, 그 세계에서의 경험을 얻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얻은 경험은 예술 작품을 다른 시간과 장소에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게 하는 초석이 된다. 5장은 디아 비컨에 전시된 빛과 소리를 이용한 작품을 예시로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현상학적 경험을 조명한다. 6장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테칭 시에의 전시를 대조하며, 예술가가 ‘시간’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7장은 시차를 두고 구겐하임에서 두 번의 전시를 한 제니 홀저의 사례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고 반영하는 예술 작품을 테마로 하고 있다. 8장은 나오시마에 전시된 양혜규와 아핏차퐁의 협업을 소재로, 자연의 시간을 예술이 어떻게 담아내고 공유할 수 있는지 다루고 있다. 9장은 피에르 위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던 베니스 비엔날레와 리움미술관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그의 작품에서 현실과 허구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설명한다. 나아가 저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허구이며, 그러한 불확정성과 취약함이 곧 현실”[2]이라고 주장한다.
10장부터 마지막 15장까지는 특정 개인의 삶을 통해 예술을 경험한다는 게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10장은 프랑스 콩소르시옴의 김승덕 디렉터를 소개하며, 한 사람의 시간이 녹아든 미술관이 마치 그 사람처럼, 시간의 흐름에도 낡지 않고 “산뜻하고 경쾌하게 나이 든”[3] 과정을 이야기한다. 11장은 호주 원주민 출신 예술가 다니엘 보이드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서 시간을 잊지 않는 것의 가치를 전달한다. 12장은 조각가 김윤신의 삶과 예술을 통해,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인 한 작가의 일대기를 살펴본다. 13장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예술 감상이란 온전한 감각과 자유를 느끼는 시간임을 역설한다.[4]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예술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14장은 저자가 재직하는 국제 갤러리에서 열렸던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를 소재로 예술의 초월성과 추상성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15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성을 다하여 전시를 꾸리는 저자의 시간과 경험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통해 “사라짐으로써 사라지지 않는”[5] 가치를 다루며 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