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
김륜아
본 전시는 창작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김륜아의 창작 신화는 인간이 사회의 타자이자 동시에 동경의 대상인 새와 물고기 등의 신을 숭배하다가 점차 이용하게 되고, 그 결과 신과 인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타자를 받아들인 인간과 그 인간을 사랑한 신이라는 소수의 사랑에 의해 세상은 평화를 되찾는다. 이 이야기에서 인간은 욕망을 품고 타인을 이용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다름을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적인 존재로, 주로 빨간색으로 상징된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인간과 싸우기도 하는 신은 주로 파란색으로 상징된다. 마지막으로 둘의 혼성으로서 깨달은 자의 상징은 주로 노란색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 질서와 자유, 언어와 감각 등의 이분법은 어느 쪽이 옳다고 제시되기 보다는 둘다 부정하지 않고 함께 갈 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나타내는 소재다. 그림은 이야기와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러한 과정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사고의 과정을 긍정한다.
- 인간은 머리를 바꾸어 끼고 신의 흉내를 내었다. 천으로 날개를 만들어 끈으로 매달고 하늘을 나는 시늉을 했다. 다리는 무릎을 꿇거나 꼬아서 없는 시늉을 했다. 거친 판자와 나무조각으로 만들어진 무대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인해 오색빛깔의 신전이 되었다. 인간에게는 신에게는 없는, 재현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가짜 날개는 그 자체로 멋있었고, 숨겨지지 않는 다리는 강인해 보였다. 그것은 곧 인간의 힘의 원천이 되었다.
- 천국을 그리려던 그림은 여러 번 뭉개고 덮는 반복적인 행위 끝에 인간의 연극 무대가 되었다. 화려한 분홍색과 보라색은 현실적인 피의 색으로 매끈하게 덮였고, 그 위에 연극 무대가 시원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그 밑의 흔적들로 인해 그림의 표면은 울퉁불퉁해졌고, 인간의 피부는 상흔을 간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Human Play>를 그린 후에야 원래 그리려던 <Heaven>을 제대로 그릴 수 있었다.
- <Heaven>은 신화 연작에서 어렴풋하게 정해둔 색의 상징을 파기한 후에야 완성되었다. 상징을 유지하고 그렸을 때는 도무지 완성되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색상을 완전히 뒤바꿔본 뒤, 이를 참고로 하여 다시 칠하고 나서야 내가 생각했던 천국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이 그림에는 신화 연작에서 주로 사용된 빨강, 노랑, 파랑 대신 분홍, 초록, 터키석 색이 주를 이루며, 이 색들이 형상을 파괴하고 있다.
- <Pure Land>를 이루는 툭툭 끊어진 붓질들은 우연히 어떤 형상들을 상상하게 했다. 붓질의 중첩일 뿐인 이 형상들은 상상 속의 새가 되기도 하고, 말을 탄 사람이 되기도 했다. <Pure Land>는 원래 짙은 보라색 배경에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색이 반짝이는 그림이었지만 여러 번 다시 칠하는 과정을 통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포화된 그림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우연히 탄생한 흔적들은 소멸되지 않고 남았고, <Horse Rider in Pure Land>와 <Postman in Pure Land>를 낳았다.
- <The Back of the Seeker>은 2016년의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다. 이 드로잉은 노란색과 에메랄드 빛으로 동굴을 그린 그림이었다. 동굴의 형태는 물감을 쌓고, 긁어내고, 문지르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으로 변해갔다. 원래 신화 연작에서 노란색에게는 딱히 주어진 역할이 없었으나, 이 그림을 통해 노란색에게 깨달은 자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이 그림보다 먼저 그려진, 붉은 인간의 공격을 나타내는 <Kicking>에는 파란색과 노란색도 사용되었다. 인간은 다른 것을 흉내 내고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소설 쓰기보다는 시 쓰기와 비슷하다. 명쾌하고 단단한 구조보다는 나뉘고, 끊기고, 만든 이만의 상징이 부여된 어떤 것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굉장히 폐쇄적이고 외부와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좋은 그림은 분명히 그린 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감각을 전달하는 개방적인 것이다. 좋은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그 감각을 공통적으로―저마다의 언어로 치환해서―느낀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계속 그림을 뒤엎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