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김륜아

고대 그리스에서 회화와 조각은 본질을 모방한 것의 그림자를 모방한 것으로써, 열등한 취급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의자가 있다면, 의자라는 사물은 의자의 본질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회화와 조각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물 의자를 모방한, ‘모방의 모방’이라는 이야기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의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능력을 요하는 조형언어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조형언어가 분리되었다. 전자는 선(*disegno)*으로 대표되고 후자는 색(colore)으로 대표된다. 선, 형태, 구도 등은 사고와 논리를 요하는 것으로써 회화와 조각의 지위를 높여주었다. 회화와 조각의 지위를 높여주기는커녕 격하시키는 색은 오래도록 미술사에서 타자였다. 색은 인간을 현혹시키고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특정 안료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색에 대한 이러한 혐오와 동경은 색이 타자의 위치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색과 달리 선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왜일까? 선은 자연계에 존재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현상에 의해 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이 어떤 대상의 본질을 나타내고자 때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선은, 인간이 자신이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한 특징들, 이성적인 것, 판단하고 사고하는 것, 영원한 것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분명 자연계에 존재하는데도 여러 현상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은 종잡을 수 없는 것, 감정적인 것, 매혹시키는 것, 변화하는 것을 대변했고,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인정하기 싫은 면들을 보게끔 만들었다. 그러므로 색은 형태에 종속되어야 했으며 더 눈에 띄어서는 안 됐다. 미술사에서 사조들이 서로 경쟁할 때 색을 중시하는 사조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던 적은 거의 없다. 그 동안 배제되어 온 것들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색도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은 여전히 선에 비해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했다.

동양의 수묵화에서 선과 색은 뚜렷이 분리된 요소가 아니었다. 먹은 화가의 몸짓과 힘을 전달하는 획이자 동시에 오묘한 농담과 색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선과 색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서양의 감각과는 달랐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양의 개념과 제도가 유입되면서, 수묵의 붓질은 선으로만 이해되고, 먹의 농담이 지닌 색채적이고 감각적인 지점은 간과되었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이분법과 위계를 머릿속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색에 대한 열망은 항상 이런 이분법에 반항하게 만들었다. 색이 너무 튀어서 형태가 망가져 보이는 지경에 이르러 혼이 난 적이 많다. 그림의 기초를 배울 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세련된 환영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래서 이런 나의 욕망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미술대학에 진학해서는 이런 욕망을 억누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형태와 색의 싸움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형태를 강조할수록 색은 죽었다. 색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색을 담은 붓질이 다른 붓질에 가려지지 않게 해야 했는데, 둘 사이의 조율방식을 찾는 것이 대학원 시절 나의 과제이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에서 나는 형태와 색이 공존하는 가운데 색이 흐려지지 않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색이 가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붓질이 형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색을 전달하는 독립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형태를 먼저 그리지 않고 형태의 외곽을 색을 가득 담은 붓질로 구축했다. 이렇게 하면 형태가 존재하면서도 그것과 동등하게, 혹은 그것보다 더 색이 강조되었다. 어린 시절에 그렸던 그림에서 착안하여, 윤곽 내부의 묘사를 최대한 억제하여 형태에서 색 자체만이 두드러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형태를 따로 구축하지 않고, 색을 담은 굵은 붓질들이 서로 얽혀서 형태를 성기게 구성하도록 하기도 했다. 밑칠의 색과 그 다음에 올라가는 색을 다르게 하고 긁는 기법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드는 것이 곧 파묻힌 색을 드러내는 일이 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어떤 화가든 당도할 수 밖에 없는, 형태에 의한 색의 파괴와 제거를 최대한 막고 싶었다.

번개의 획은 지그재그로 퍼져나가는 강한 획이면서 동시에 지상에 불로써 색을 발한다. 그야말로 몸짓과 색을 담은 이상적인 붓질 그 자체다. 형태를 만들지만 그것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결과적으로 색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제우스의 번개가 먼 거리를 날아와 지상을 정화하듯이, 화가의 팔로부터 붓끝으로 전달되는 화가의 몸짓은 색으로써 그 힘을 발한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선은 색을 입음으로써만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 번개가 내리 꽂히는 순간은 색이 형태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순간과 닮았다. 한번 발생하면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내리 꽂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다. 형태와의 조화, 균형 속에서 색은 항상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왔지만, 참다 못해 터져 나오는 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강렬하다. 이런 번개의 궤적을 쫓아 그것이 구름에 묻혀 사라지기 전에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유구한 욕망이다. 번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고 나타날 준비에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