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7
김륜아
나는 표현주의를 테제로 삼아 회화의 조건과 힘을 탐구한다. 내게 있어 표현주의 회화는 물질적인 표면으로 살아있는 것을 흉내 내는 무생물로, 희극적이고 인간다운 것이다. 나는 표현주의 회화의 두터운 물감 자국, 만져질 것 같은 붓질, 재현하는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채와 몸짓에 거짓과 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화가의 반복되는 행위로 인해 매너리즘화된 세련된 표현과, 화가의 고군분투가 담긴 투박하지만 진실된 표현은 같은 화면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것이 표현주의 회화가 인간의 모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다. 나는 물감으로 드로잉도 하고 회화도 제작하는데, 내가 드로잉과 회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이러한 표현의 진실성 여부다. 드로잉에서의 표현을 나는 보다 진실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를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짓된 표현이 있어야 인간의 모순이 드러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데, 이때 구상과 추상이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 회화 작업을 시작했던 2019년, 불안과 함께 떠오르는 ‘형상을 재현’하는 작업과 불안을 반영하는 ‘몸짓이 대두되는’ 작업에서 출발한 일련의 작업들은 이후 작업의 두 축이 되어 시차를 두고 오간다. 추상 작품을 제작할 때 느껴지는 회의는 구상 작품의 제작으로 이어지고, 구상 작품의 제작에서 느껴지는 불안은 추상 작품의 제작으로 이어진다. 작품들은 서로가 서로를 참고하며 회화의 자기참조적인 특성을 갖고 논다. 이러한 자조적인 행위 아래에는 회화의 힘에 대한 강력한 신뢰가 있다. 나는 내 팔의 움직임과 붓이 물감을 바르며 남기는 결, 오일 스틱으로 거칠게 물감 층을 밀어내며 쌓인 자국, 손톱으로 얇거나 두꺼운 물감 층을 긁어낸 날카로운 선 그리고 이들이 전달하는 강렬한 색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