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강화 +n
25.4.21
진예리의 작품에 대해
김륜아
작가의 작업실은 크고 넓었다.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팔레트들이 흩어져 있다. 6개의 캔버스를 경첩으로 이어 붙인 거대한 병풍 앞에는 작가가 씨름한 도구와 그로부터 탄생한 작고 귀여운 조각들이 있다. 때로는 팔레트가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작가의 말을 대변하듯, 작가가 모아둔 OHP 필름 팔레트들은 바닥에서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라도 영감을 받은 순간에 작가의 손에 잡히기 위해 펼쳐져 있다. 이 정도 공간도 작가에게는 작아 보였다. 더 큰 공간에서 작업한다면 얼마나 더 눈이 즐거워질까? 그런 상상을 하게 하는 작업실이었다.
작가가 만드는 화면은 어두운 편이고, 그건 붓은 거의 쓰지 않고 롤러, 스퀴즈, 스펀지 등 다양한 도구로 흔적을 계속 쌓아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히 어두운 게 아니라 깊이를 지닌 거였다. 예를 들어, 처음의 밑칠이 보라색이었다면, 그 위에 잘 보이는 연두색의 흔적들이 올라갔을 것이고, 그 흔적들이 생각보다 잘 안 보인다면 그 위에 잘 보이는 분홍색으로 흔적을 남겼을 것이고, 그 흔적들이 너무 이질적이라면 조화를 위해 다시 밝은 하늘색의 흔적이 올라갔을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그림을 보며 상상한 예시다.) 이 과정은 반드시 더 어두워지는 결과를 낳지는 않지만, (더 밝은 색이 계속 올라갈 수도 있으므로) 깊이는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흔적과 흔적 사이에, 레이어와 레이어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이때, 붓질과 도구의 흔적의 차이점은, 후자의 결과물이 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붓질보다 더 예기치 않게 조화롭지 못한 부분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물질이 남긴 흔적들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어, 아름다운 부분에 괜히 더 흔적을 쌓고 싶기도 하고, 이상한 부분을 괜히 남기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화면의 입체감과 깊이를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어떤 부분에서는 조화롭고, 어떤 부분에서는 조화롭지 않은 흔적들을 조절한다. 이 과정을 통해 평면이던 캔버스에는 울룩불룩하고 쑥 들어갔다 쑥 나오는 작가만의 고유한 깊이가 탄생한다.
너무 조화롭기만 해서 재미 없는 음악보다 조화와 부조화 사이의 줄을 타면서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이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 과정이다. 한편, 낮고 깊게 울리는 음 위로 산뜻한 음들이 흘러가는 리듬이 그림이라면, 이 그림을 만들어낸 팔레트들은 팡팡 터지는 상큼하고 톡 쏘는 음들로 구성된 리듬이다. 특이하게도 작가는 OHP 필름을 팔레트로 사용한다. OHP 필름 팔레트는 작가로 하여금 볼 수 없는 팔레트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이는 자국들이 쌓이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을 작가가 인식하게 했다. 그 결과, 작가는 이 자국들은 그냥 두지 않고, 오려서 모빌을 만들거나 레진을 사용하여 유리 같은 팔레트 조각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길, 모빌들은 그림이 숲이라고 할 때 그 안에 살 법한 요정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레진 조각들은 그림에 붙여져 색다른 입체감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붓이 아닌 도구들의 예측 불허한 흔적들, 붓을 닦고 남은 물감 찌꺼기, 다 쓴 OHP 필름 팔레트. 작가는 더 새롭고 즐거운 그림을 위해 작업 과정에서 쉽게 잊혀지는 것들을 버리지 않고 저마다의 즐거운 놀이 방법을 만들어준다. 때로는 자폐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그림의 창작 과정은 작가를 사선으로 비켜 지나간다. 작가는 회화 스스로 유폐되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무엇보다 본인이 즐겁고 신나는 작업을 위해, 그리하여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다시 돌아보고 활용방안을 찾는다. 그림보다 팔레트가 예쁘다면 OHP 필름을 팔레트로 써서 살린다. 물감 찌꺼기의 색이 작가마다 다른 것이 재미있다며 찌꺼기를 모아 조각 만들기를 시도한다. 캔버스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도구라면 무엇이든 실험해본다. 그에게 천원샵과 마트는 모험자 길드의 소중한 무기상이다. 작가만의 방식으로 강화된 장비들은 알 수 없는 모험의 앞날을 든든하게 함께한다.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도 회화의 한계와 의미를 실험하지만, 나아가 작가의 무엇이든 열심히 즐기고 재미있게 해나가는 과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무언가를 저렇게까지 즐기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는지, 그런 적도 없으면서 사는 게 재미 없다고 하진 않았는지 말이다.